블로그 프로젝트 - 당신, 왜... 웹사이트를 만든거지?
"그야.. 재미있으니까."
이전 글에서는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와 기존 네이버 블로그를 버린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러면 오늘은 다른 서비스로 갈아탄 게 아니라 블로그를 아예 새 웹사이트로 만들어버린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어떤 블로그를 만들까
사실 예전에는 better 네이버 블로그를 원했다. 사람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더 빠른 말을 원했다는 헨리 포드의 말처럼, 그냥 네이버 블로그처럼 글 잘 보이고 댓글도 되고 모바일에서도 쓸 수 있는 데 더해서, 구글에서 검색되고 외관도 바꿀 수 있는 무언가... 뭐 그런 걸 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생각해 봤다. 나는 정말로 어떤 블로그를 원할까? 그리고 내 생각 뿐 아니라 보통 좋은 블로그는 어떤 블로그인지 여러 모로 조사도 해 봤다.
좋은 (기술) 블로그?
https://www.44bits.io/ko/post/8-suggestions-for-tech-programming-blog
좋은 블로그란 무엇인가? 조사를 해보니 대충 이랬다
- 적당한 분량의 뛰어난 글이 많이 많이 올라온다
-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댓글을 달며 소통한다
위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볼만한 컨텐츠가 많아야한다.
즉 좋은 글이 많아야 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결국 주인장이 멋진 글을 많이 많이 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한가? 핵심은 주인장의 내적 동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블로그 서비스는 작가의 내적 동기를 유지할 수 있게 돕거나,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블로그
permanence: 닥치고 오래가야 함
- 나는 이번에 새로 만드는 블로그가 가치 있는 블로그가 되었으면 했다. 취준생들이 흔히들 취업 전에 만들고 취업하면 유기하는 보여주기용 포폴이 아니라, 내가 죽기 전까지 머물만한 보금자리를 인터넷에 만들고자 한다. 그러자면 블로그가 아주 오래 가야 한다.
- 그리고 블로그에 저장된 정보가 인터넷에서 유실되지 않고 영속적으로 저장되었으면 한다. 인터넷에는 도메인이 넘어가거나, 사이트 구조가 변해서 접근이 불가능해지는 링크들이 정말로 많다[1]. 내 블로그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과거 블로그도 닫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free: means free speech, not free Dobby.
-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네이버 블로그 이웃들 중에는 그림쟁이도 있고 역식자분들도 있는데, 몇번 삭제/차단 당해본 사람들은 네이버 눈치 보면서 움찔움찔거리는 게 늘 안타까웠다. 나야 거의 기술 이야기만 하니까 별 피해는 없었지만, 그냥 검열의 존재 자체가 싫다.
- 돈은 좀 내도 된다. 도비는 무료에요의 무료가 아니다..
easy-manage, easy-use: 관리하고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
- 네이버 블로그를 이전 글에서 졸라 까긴 했지만, 네이버만큼 접근하기 쉽고 쓰기 편한 블로그도 잘 없다. 새로 만드는 블로그도 네이버 정도로 글 쓰고 관리하기 편해야 한다.
- 이는 작가의 내적 동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중 하나다. 글을 쓰거나 관리하는 게 힘들고 번거롭다면 당연히 글을 안 쓰게 될 것이다.
mobile: 모바일에서 모든 작업 가능
- 네이버도 킹론상으로는 모바일로 포스트 관리가 가능하지만, 모바일에서는 과거 데스크탑에서 작성한 글을 수정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새로 만드는 블로그는 네이버 수준은 당연히 지원하고, 그 이상으로 모든 일을 모바일에서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역시 내적 동기 유지에 중요하다. 블로그는 취미이기에 각잡고 쓰기보다는 남는 시간이나 출퇴근길에서 글을 쓰는 편이 많다. 그래서 모바일로 작업할 수 있어야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다.
- 또한 거대한 실패를 겪고 나서 손 부상 문제로 한동안 쉬어야 했는데, 키보드를 너무 오래 쓰면 손이 또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게 모바일 기능은 옵션이 아닌 필수다.
그 외에..
communication 소통하는 독자들이 popular: 많으면 좋겠다
- 주인장도 사람이야 사람! 관심을 싫어하는 사람은 인터넷에 없다.
문제 해결 방법론
사실 내가 지금까지 한 건 블로그 서비스라는 "문제"에 대해서 "조건Conditions"과 "사실Facts"을 조사하고, 생각해낸 것이다. 이는 G. Polya의 불후의 명저 How to Solve it에서 가르치는 문제 해결 방식이다. 예시
머리 속에 떠오른 해답에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뛰어들지 말고, 문제의 이모 저모를 뜯어보고, 관찰하고, 익숙해진 다음 해답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나는 진지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땐 항상 이렇게 한다[2].
대충 내가 원하는 블로그의 조건(permanence, free, easy-manage, easy-use, mobile, communication, popular)은 다 알아본 것 같으니, 이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들을 나열해보고,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지 알아보자.
기존 블로그 서비스/솔루션
github.io page + static blog gen
나 프로그래머요 개발자요 하는 사람이 직접 블로그를 만든다? 십중 팔구는 아무 생각 없이 깃헙 페이지 호스팅에 정적 블로그 생성기를 쓰곤 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선택이다.
NOT easy
: 깃헙 페이지는 레포에 커밋을 푸시하는 행위가 곧 포스팅이다. 블로그를 쓰려면 반드시 git을 써야 한다는 건데, 아주 불편하고 번거롭다. 글쓰고 버튼 누르면 끝나는 네이버 블로그의 편의성과 비교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NO mobile
: 모바일에서 git을 쓰는 건 더욱 번거롭다. termux를 설치하고 이걸 하고 저걸 하고 한다는데[3] 글쎄.. 실제로 이렇게까지 해서 모바일에서 블로그 하는 사람이 있을랑가 모르겠다.- 물론 영속성permanence은 굉장하다. 하지만..
과도한 투명성
: 깃헙 페이지 호스팅을 공짜로 쓰려면 레포가 반드시 public이어야만 한다. 이건 투명성이 너무 과도하다. 술처먹고 상사 욕 써서 블로그에 올린다거나, 나도 모르게 AWS 비번 같은 거 올리면 진짜 x된다.NO 잊혀질 권리
: 게다가 이렇게 올라간 걸 내리기도 쉽지 않다. 네이버 블로그면 그냥 비공개 버튼 하나 누르면 되는데, 깃헙은 그 때까지 커밋 히스토리에 남은 모든 걸 제거해야만 한다. 이걸 하려면 전용 도구[4]까지 동원해야 한다.
결과는? 수없이 많은 버려진 github.io 블로그들이다. 만든 뒤 포스트 몇개만 있고 이후 몇 년 간 아무런 소식이 없는 블로그가 널리고 널렸다: 4년 6년 7년
블로그를 꾸준히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깃헙 페이지로 꾸준히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머기업 블로그 서비스
사실 전에는 몰랐는데, 블로그 서비스 관련으로 조사하면서 한국 메이저 블로그 서비스들이 얼마나 패악질을 저질러 왔는지 알게 되었다.
네이버 블로그 2.0 에디터 삭제 사태
..는 이전 글에서 상세히 설명했으나 거기서 보도록 하자.
그래도 네이버는 양반이다. 다음은 망나니가 따로 없다.
다음 블로그 서비스 종료
그렇다고 한다.
돈 안되는 건 가차 없이 목을 쳐버리는 그 기업.. 하지만 데이터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배신감, 분노, 떡락하는 신뢰로 발생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은 계산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이 사건을 알기 전에는 대기업이 제공하는 블로그 서비스가 진짜로 종료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저쪽 높으신 분들이 누군진 몰라도 블로그 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뭐 이해할 수 있다. 사별한 아내가 남긴 존 윅의 강아지를 죽인 양아치도 그건 그냥 개새끼라고 했지. 안타깝게도 다음 블로그 유저들 중에는 존 윅이 없었나보다.
그외 다양한 블로그 서비스
사실 Velog가 요새 엄청 핫하다. 너무 핫해서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벨로그가 웹땔깜 지망생 TIL만 쳐 있는 쓰레기통 이라는 주장도 있다. 음... 아무튼 요새 벨로그가 개발자들 사이에서 핫하긴 하다. 나도 추천한다. 어지간하면 걍 벨로그 쓰면 된다.
그리고 벨로그를 만든 높으신 분.. 개발자 벨로퍼트님부터가 원래 블로그 하는 사람이니, 정말 큰 일이 있지 않고서야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패악질을 저지를 거 같진 않다.
벨로그 말고도 블로그 서비스는 참 많다. 티스토리도 있고 브런치도 있고 미디움도 있고...
사실 정말로 아까 말한 조건들만 충족된다면, 벨로그에 베팅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넘의 블로그 서비스의 근본적인 문제점: 데이터 영속성
내가 원하는 블로그의 조건들 중 1빠따로 내세운 것은 영속성permanence이다. 영속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영속성을 달성하려면 블로그 서비스에 어떤 피처가 필요할까? 바로 데이터를 내 맘대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데이터를 마음대로 백업하고, 마구 복사하고, 내 ㅈ대로 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블로그의 영속성이 보장된다. 데이터를 웹에 띄워주는 서비스가 중단되어도, 블로그 데이터를 전부 저장한 USB가 내 수중에 남아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블로그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내 데이터를 남이 관리해주는 웹 서비스는 태생적으로 영속적이지 않다. 일반적인 웹 서비스는 데이터의 영속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웹 서비스는 서비스를 하는 주체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시기에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왜 블로그 서비스는 백업을 지원할 필요가 없는가
유저 데이터의 완벽한 백업을 지원하는 블로그 서비스는 거의 없다. 보통 DB로 데이터를 저장하니까, 유저 한 사람의 데이터를 파일로 백업하는 기능은 직접 만들어야 한다. 즉, 비용이 든다.
하지만 잘 나가는 블로그 서비스는 딱히 백업을 지원할 이유가 없다. 백업하기 쉬우면 유저가 다른 서비스로 도망가기도 쉽고, 애초에 이런 걸 신경 쓰는 나 같은 이상한 사람이 극소수다.
평범한 유저들이 이런 "데이터 백업"에 신경쓰는 건 항상 서비스가 사라지려고 할 때 뿐이다. 안 그래도 돈 들어서 없애려는 사업에 돈을 더 들여서 제대로 된 백업 기능을 만들어 주는 건 사업자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블로그 서비스가 망할 때 유저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처먹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위에서는 대기업 블로그 서비스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투로 써놨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제공하는 블로그 서비스도 근본적으로는 웹 서비스이기에, 데이터 영속성 면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진정한 영속성을 원한다면 그냥 남에게 데이터 관리를 맡기지 않아야 한다.
설치형 블로그 솔루션들
그러면 워드프레스 같은 설치형 블로그 솔루션을 쓰면 되겠네? md 파일로 데이터 관리하고.
Obsidian Publish는 정말 완벽해보이는데? 지금도 데탑이든 모바일이든 Obsidian 쓰고 있는데 그걸 그대로 블로그로 만들 수 있다? 딱 내 맞춤형 서비스인데?
음... 반박할 수 없다. 특히 옵시디언 퍼블리시는 내가 내건 조건 모두를 완벽히 만족한다. 하지만 나는 설치형 블로그도 거르고 결국 직접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 이유는...
결국 직접 만드는 이유
저 취업해야 되요 ㅠㅠ
식질머신 정도면 어디든 대문 박살내고 들어갈 수 있다고? 글쎄다.. 만든지 너무 오래 되서 코드 설명은 잘 못 할 거 같고, 배포 후 몇 년 간 업데이트가 없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다(물론 새 버전 만들긴 할 건데 아직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그리고 식질머신 v0 배포 이후 공백의 2년을 설명해야 하는데, 이 때 한 거라곤 식질머신 학습/배포를 위한 정보 시스템을 만드니 하면서 개삽질하다 결국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 밖에는 없다. 내게는 아주 중요하고 엄청나게 의미있는.. 거의 인생을 바꿔 버린 경험이지만,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라고 해보리면 사실 할 말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변명이라곤 실패에서 배웠다 지식이 늘었다 이 정도 밖에 없는데.. 아무런 근거 없이 이 말을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게는 새로운 (프로젝트) 성공 경험이 절실히 필요했다.
솔루션보다 웹 그 자체를 배우고 싶다
웹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하는 솔루션은 정말 많다. 나중에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싶다면 특정 솔루션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프로그래머다. 웹은 점점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가고 있어서, 이제는 웹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식질머신 다음 버전도 웹으로 배포하고 싶고
그래서 나는 웹 그 자체를 배우고 싶었다. 워드프레스 같은 솔루션이 제공하는 것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과 프로토콜, 웹 브라우저, 웹 서버 등 웹 기술의 기초와 근간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려면 프로젝트를 하는 게 최고다.
아.. 인생 개노잼 할 거 존나 없네 컨텐츠가 부족하네.. 블로그나 만들까?
사실 취업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도저히 심심함을 참을 수가 없어서 만들었다. 엌ㅋㅋㅋ
[거대한 실패]로 생긴 손 부상 때문에 6개월 컴퓨터 압수
당하고 나니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소설 만화 애니 영화 드라마 산책 달리기 등산 마라톤 온갖 걸 해 봤지만 그 때만 재미있고 아무리 해도 프로그래밍 만한 게 없었다. 도파민 회로가 프밍으로 불타버린 게 틀림없다.. 나는 점점 욕구 불만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몸이 좀 멀쩡해지자마자 음악앱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미적지근한 설정질(configuration)만으로는 6개월을 금욕한 내 프밍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었다. 결국 못참고 뭔가 만들긴 할 거였는데, 식질머신 새 버전은 아직 공부가 부족하고.. 블로그 프로젝트가 딱이었다.
사실 애초부터 프밍을 하지 않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후반에 밝힌 개인적인 이유가 너무 커서, 위에서 블로그에 필요한 조건들을 찾아볼 때는 이미 만드는 건 당연한 거고 어떻게 만들지 고민할 때였다.
다만 개인적인 이유부터 말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이렇게 글을 썼다.
그리고 저렇게 문제를 분석해보는 것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결론
수많은 블로그들이 버려지고 사라진다. 직접 만든 블로그는 더욱 빠르게 사라진다.
그렇다고 남의 서비스를 쓸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게 다 있을리도 없고, 내 데이터를 남에게 맡기기도 싫다.
그러니 직접 잘 만들자.
내게 딱 맞는 서비스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자!
그러면서 겸사겸사 웹도 배우고 재미도 보고...
취직용 포트폴리오로 먹고 버릴 블로그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가치 있는 일을 하기에도 짧은 인생에서 남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일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나는 앞으로 평생 함께할 보금자리를 인터넷에 마련하고자 한다. 최소 10년을 목표로 만든다. 과거에 쓰던 네이버 블로그도 16년을 넘게 버텼다.
그 정도는 이겨야 하지 않겠나?
가장 최근에 당한 것은 jong10이라는 사람의 나름 유명한 글: 빛은 충분히 빠르지 않다이다. 나름 잘 쓴 글이라 수많은 사이트에 퍼졌는데 1 2 3 4 대부분 깨진 링크가 달려 있다. ↩︎
https://docs.github.com/ko/authentication/keeping-your-account-and-data-secure/removing-sensitive-data-from-a-repository ↩︎